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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지장'(百樂之丈:모든 악기의 으뜸)의 소리를 사진 '거문고'

by 박필률 2023. 7. 2.

'거문고'

거문고의 기원은 『삼국사기』에 전해지는데, 중국 진(晉)나라에서 보내온 칠현금을 고구려의 제이상(第二相) 왕산악(王山岳)이 본 디 모양을 그대로 두고 그 제도를 많이 고쳐 만든 것이라 한다. 왕산악이 이때 100여 곡을 지어 연주하였더니 검은 학이 날아들어 춤 을 추었기에 ‘현학금(玄鶴琴)’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뒤에 ‘학’ 자를 빼고 ‘현금’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32년 중국 지린성 지안 현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가 발견됨에 따라 거문고는 진나라 이전의 고구려에 이미 존재했 다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또 거문고라는 명칭도 현학금에서 나온 것이 아닌 ‘고구려금’ , 즉 ‘감고(거뭇고)’의 음변(音變)으로 보기 도 한다. 신라에 전해진 거문고는 옥보고(玉寶高)·속명득(續名得)·귀금(貴金)·안장(安長)·청장(淸長)·극상(克相)·극종(克宗) 등에게 전승되었으며, 극종 이후 약 1세기가 지난 뒤부터 세상에 알려져 널리 보급되었다.

 

수십 세기를 내려오며 민족의 정서를 북돋아 온 악기 중에서 우리의 고유한 음악 정신에 한발 더 밀착해 온 악기를 꼽으라면 거문고 가 그 첫손에 꼽힌다. 현금이라고도 불리는 거문고는 그 소리가 깊고 장중하여 학문과 덕을 쌓은 선비들 사이에서 숭상되었으며, 모 든 악기의 으뜸이라는 ‘백악지장(百樂之丈)’의 호칭을 얻었다. 가야금, 비파와 함께 한국의 삼현(三絃)악기로 꼽히며 우리나라 현악 기 중 음폭이 약 3옥타브로 가장 넓다.

 

거문고는 영산회상(靈山會相,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회의 불보살(佛菩薩)을 노래한 악곡)과 보허자(步虛子, 궁중에서 쓰이던 관 악합주곡) 계통의 변주곡, 가곡 반주 등 지난날 풍류방에서 연주되었던 대부분의 악곡에 편성되며, 민요 반주 등 민속음악에서는 거 의 쓰이지 않는다. 다만 백낙준에 의해 창시된 거문고산조는 거문고가 지닌 특성을 백분 활용하여 출중한 느낌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거문고를 사용한 창작 음악들이 많이 작곡되어 새로운 주법도 개발되었고, 개량 문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거문고

한국음악에서의 거문고의 비중

우리 조상들이 거문고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가는 현재 남아 있는 여러 고 문헌과 악보의 대부분이 거문고 악보인 것으로도 잘 드러 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한국음악에 있어 거문고 음악은 ‘아정(雅正)한 음악이라 특징지을 수 있겠다. 다른 악기에 비해 음량이 크지 않고 음색이 화려하지 못한 거문고 가 옛 선비들 사이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은 까닭은 거문고에서 품위와 웅장함, 소리의 여백에서 오는 어떤 저력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왕조 내내 명분과 유교적 이념에 얽매여 자신의 음악적 가능성을 충분히 시험해 보지 못했던 거문고는 19세기 말경부터 서서히 반동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해 20세기 초에 이르러 드디어 본격적인 속악(俗樂)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소위 민속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거문고산조로서 말이다. 거문고는 가야금과 달리 괘(줄을 받치는 조그마한 받치개)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괘 위에서 소리를 낼 때에는 왼손으로 줄을 위에서 아래로 미는 독특한 주법을 쓴다. 오른손으로는 술대라는 대나무 막대를 사용하여 줄을 치거나 뜯는다. 연주법뿐만 아니라 음색, 음량, 연주 자세에 있어서도 거문고는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지키고 있다.

 

거문고의 술대는 거문고산조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 강하게 술대를 내려 칠 때 술대가 줄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는데, 이 타악기적인 부딪힘이 거문고 소리에 역동성을 더해 주는 것이다. 저음역의 개방현 역시 이런 효과에 한몫을 한다. 술대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 정 도로 여리고 섬세하게 타다가(높은 음역에서), 돌연 술대로 힘을 다해 내려침으로써 가락에 악센트를 주는 것, 그리고 개방현의 풍부 한 여음으로 넉넉하게 바닥을 받쳐 주는 멋! 이것이 바로 거문고산조의 매력이다. 거문고가 속악의 영역으로 들어왔다고는 하나 본래 의 기품과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산조라는 새로운 음악 양식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6현거문고와 개량거문고

현거문고는 오동나무를 앞면으로 하고, 밤나무를 뒷면으로 하여 붙여 만든 울림통 위에 16개의 괘를 버팀목으로 달았으며, 그 위에 명주실을 꼬아서 만든 6줄의 현을 올려 만든 악기이다. 악기를 무릎에 두었을 때 몸 쪽부터 차례로 문현, 유현, 대현, 괘상청, 괘하청, 무현이라 일컫는다. 대현이 가장 굵고, 문현, 무현, 괘상청, 괘하청, 유현의 순서로 가늘 어진다. 유현, 대현, 괘상청 3줄은 16개의 괘 위에 얹고, 문현, 괘하청, 무현 3줄은 안족 (기러기발) 위에 놓여진다. 악기를 무릎에 놓고, 오른손으로는 해죽(海竹)으로 만든 단단 한 술대를 잡는다. 현침(絃枕, 줄의 머리를 걸치는 침목) 가운데를 술대 끝으로 내리치거 나 뜯으면서 소리를 내는 것이다. 왼손의 약손가락은 유현, 가운뎃손가락은 대현을 각각 누른다.

 

대현에는 약손가락을 쓰지 않고, 유현에는 가운뎃손가락을 쓰지 않는데, 집게손가락만큼 은 두 줄 모두에 사용할 수 있다. 6현거문고는 현재 정악과, 산조, 창작곡, 관현악곡에 두 루 쓰이고 있다. 개량거문고는 6현거문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시범 연 주를 거쳐 사용되고 있다. 1990년 이재화 교수가 유현이 두 줄인 7현거문고를 만들어 시 연한 것을 시작으로, 8현, 9현 거문고가 만들어졌으며, 2001년에 이재화 교수는 10현 개 량거문고 ‘화현금’을 만들었다. 화현금은 문현이 2줄, 유현이 2줄, 개방현이 다섯 줄로 이 루어졌으며, 음량과 음역 개선, 기존의 거문고 괘에서 나오는 잡음 해소에 중점을 두어 거문고 개량의 한 모범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흥곤 씨가 맑은 음색, 음량 및 음역의 확 대에 중점을 두어 조율기를 부착하고, 상단부를 개방했으며, 아래 판 공명을 확대해 17개 의 괘를 설치한 ‘다류금’을 선보였다.

 

출저 : 국립국악관현악단_악기소개